설립동기
교회가 영유아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교육학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들을 주의 자녀로 기르는 일이요, 기독교 미래가 여기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도시의 한 교회가 주최하는 유치부 부모교육 강의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대체로 교회에서 하는 미취학 부모의 신앙교육 강의는 영아부와 연합해서 하는데 “유치부 단독으로 하는가?” 라고 물었더니 교회에 영아부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규모가 제법 큰 교회인데도 영아부 아기를 둔 가정이 7 가정 뿐 이라서 영아부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교인이 4 백여 명 되는 교회의 영아부 전도사님이 전화로 이런 사정을 들려줍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영아부와 유치부를 합치는 것이 어떨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라는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영아부 20여명, 유치부 20여명 되는데 사역자를 두 사람 두는 것에 교회가 재정적 부담을 앉게 된 것입니다.
저 출산, 현저하게 줄어든 주일 출석 율로 영아, 유아, 유치부로 세분화된 주일교육이 ‘미취학부’로 통합되는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미취학부 만이 아니라 유 초등부, 중고등부도 마찬가지겠지요. 가장 먼저 ‘영아부’ 라는 부서가 사라지는 교회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무관심이요, 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한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렘1:13,14.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 라고 물으신 그 물음을 우리에게 하신다면 우린 뭐가 보인다고 할까요?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의 책 “제자입니까”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영적 의미에서 세상은 마치 빠른 속도로 침몰해 가는 초대형 여객선과 같다. 선장은 배가 불원간 가라앉고 말 것을 어느 정도 감지한다. 그런데 그는 승객들에게 말한다. ‘이등실에 계신 승객 여러분은 이제 일등실로 가셔도 됩니다. 술을 드실 분은 바(bar)에서 마음껏 드십시오. 술값은 공짜입니다. 만찬장에서 축구를 하고 싶으신 분은 그렇게 하십시오. 전등을 깨뜨려도 괜찮습니다.’ 승객들은 ‘와, 정말 멋진 선장이야! 우리는 이 배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어.’ 라며 즐긴다.” 이미 배의 절반은 물에 잠겨 가는 것도 모르고.
지금 우리가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우선은 서둘러서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하고 구명보트를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레미야시대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망각하고 무덤덤하게 삽니다.
2023년 8월, 정부는 맞벌이부모의 아이보육을 위한 외국인가사도우미를 수입(?)한다는 보도를 발표했습니다. 이르면 금년 내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100명 받아들여서 시범적으로 서울의 가정에서 시행하기로 했다는군요. 정부 인증을 받은 기관이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고용해 가정으로 출퇴근시키는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일본이 이 방식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운영하는데 출산율 0.78명으로 국가소멸위기에까지 직면한 절박한 상황에서 저 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을 다해보겠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이 방법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조선일보 2023.08.01).
홍콩, 싱가포르의 입주 형, 일본의 출 퇴근 형, 여자유학생이 언어 풍습 문화 등을 배우기위해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숙박과 식사를 제공받는 문화교류차원의 유럽식 오페어(au pair)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우선 정부차원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외국인 임금 지불 문제가 되겠지요. 외국인 최저 임금 지불은 아기를 둔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으나 이러한 외국인 차등적용은 근로 법은 물론이고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데 이를 불사한 대담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어린 아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얼마전만해도 인생의 첫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하느냐가 주제였는데 오늘날에는 누가 돌보느냐에 직면했습니다.
기독교가 앉게 될 문제의 해결책이 여기 있습니다
종교적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시장화 개방화정책에 대해 기독교인이라면 입 다물고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외국인육아도우미는 거지반이 아시아권의 저소득층 국가의 여성들이 지원서를 냈습니다. ‘아시아의 영혼(문화)’을 우리는 잘 압니다. 불교, 모슬렘, 힌두교, 공산주의, 여기에 온갖 샤머니즘까지요.
문화, 경제, 종교가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유목(노마드)시대에 일어나는 보편적 시대상황이라며 관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잔인한 범죄의 유형들에서 드러난 정신문제를 우리는 이미 심각하게 겪고 있지 않나요?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기독교국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려서부터 귀신들린 아이들 이 얼마나 많은 가요! 그들은 시돈, 두로, 데가볼리의 이교문화권에서 자란 아이들이었습니다(막7:25, 9:20,막5:9, 행16:16). 우리의 공교육이 영혼양육을 도외시한 것에서 영혼이 상품화 된 ‘영혼매매시대’ 가 된 것입니다(계18:12,13).
제 자식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은 동물도 훌륭하게 잘 합니다. 가시고기의 새끼사랑, 어미 닭의 지극한 모성에 우리는 감동을 하지요. 하지만 잘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일로 어른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인간은 영적존재이며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아는 기능직이 아니예요.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인간다운인간이 되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신앙교육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진리를 떠난 후에 돌이키려면 늦습니다.
강줄기의 원천
미국의 부모교육자 매티 레드우드(Mattie C. Leatherwood)는 “영아부는 축복과 새롭게 함이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일어나고 그 역동성이 계속적으로 다른 주일학교에 흘러들어 가도록 하는 강줄기의 원천이다.”라고 했을 만큼 영아부가 하나님의 밭을 윤택하게 하는 원동력인데 이러한 영아부가 사라진다는 것은 강의 원천이 말라 간다는 얘기이니 끔찍한 현실입니다.
물방울들이 모여서 된 강줄기가 교회의 물꼬를 트고 결국은 각 교회로 흘러가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